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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이븐입니다.
최근 포크볼과 관련된 논쟁이 제법 뜨거운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지인들이 왜 정작 포크볼 전문가인 너는 이걸 안 다루고 있냐는 얘기도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제가 무슨 직함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전문가’까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안팎으로 여러 요청이 있기도 했고, 예전부터 이걸 다룰까 말까 크게 고민했던 주제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다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하던 시절, 이 포스트의 주제이기도 한 ‘포크볼’을 제1 변화구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변화구라는 말에도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면 좀 어폐가 있습니다만, 여하튼 학생야구에서 포크볼을 실전에 너무 과하게 많이 사용한 케이스이며, 이 탓에 일찍이 선수 생명이 아작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 야구 인생에서 단꿈을 꾸게 한 공이면서 동시에 야구 인생을 끝장내기도 한 애증의 구종에 대해 하도 한이 맺혔던 터라,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도 포크볼에 대해 나름 엄청난 자료조사와 공부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참 포크볼이라는 구종이 애초에 빅리그에서 사장되었던 구종이다 보니 한국에 들어와서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별 이론 체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선수의 감에만 의존한 채 전수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에 유튜브 쪽에서 논쟁이 생기고 불미스러운 모습까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실 이런 이론과 체계가 없고 오로지 감에만 의존하여 합리적이지 못한 현장의 구종 연구 탓이라는 것이 제 결론임을 미리 밝히며, 그간 포크볼에 대하여 왈가왈부가 많은 부분에 대해 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0.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부터 정립
사실 저는 구종에 대한 논쟁은 발생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종의 분류는 공을 던지는 ‘원리’에 따라서 분류가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많이들 착각하고 계시는 것이 구종의 ‘그립’과 ‘궤적’이 그 구종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논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립과 궤적이 구종을 분류하는 기준이라 한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횡 슬라이더’와 ‘종 슬라이더’는 아예 다른 구종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며, 검지 위에 중지를 겹쳐 그립을 잡는 선동열 감독의 슬라이더와 당수치기로 던지는 조용준 코치의 슬라이더 역시 아예 다른 구종으로 구분되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 스위퍼는 다른 구종으로 분류되니 맞는 말 아니냐 싶겠지만, 스위퍼라는 분류 기준의 등장 전에는 횡 슬라이더의 표준 그립이 현재 유행하는 투심 그립이 아니었으니 결국 모순이 발생합니다.)
결국 구종을 분류함에 있어 가장 확실한 것은 해당 구종이 얻고자 하는 효과와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물리 법칙의 원리를 적용해야만 합니다.
그립과 궤적은 결국 그 물리 법칙에 따른 효과에 수반되는 현상이므로 기준이 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사전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작업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순히 떠도는 이야기들 외에 영어권 사전들에서 내리는 구종에 대한 정의도 참조할 것임을 선행으로 밝히는 바입니다.
참고한 사전은 영어권 사전 중 학계 및 대중에게도 가장 신뢰도가 높은 Oxford, Cambridge, Merriam-Webster 등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일단 위의 기준을 놓고 시작하자면, 공을 바라보는 타자의 기준에서 야구의 구종은 크게 세 가지, fastball과 breaking ball, 그리고 off-speed pitch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는 타자의 기준에서 날아오는 공의 다양한 궤적을 최대한 단순화시킨 분류법이나, 투수에게도 있어 결국은 이 세 가지 구분이 기본 원리가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아래의 정의는 여러 사전과 문헌을 비교하고 그중 제가 비교 분석했을 때 원리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표기한 것을 기준으로 채택했습니다.
- fastball: a baseball pitch thrown at full speed and often appearing to rise slightly as it nears the plate (웹스터) / + 덧: Rise | The backspin on the ball combined with arm angle and leg lift causes the ball to appear to rise as it moves towards the batter, though in reality it simply falls slower than a similar speed fastball that doesn’t have backspin and therefore has a more level plane on its path to the plate. (WBSC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 breaking ball: a pitch thrown in such a way that the ball drops or curves just before reaching the batter. (옥스포드) / A breaking ball (aka breaking pitch) is a pitch in which the pitcher snaps or breaks his wrist to give the ball spin and movement. This includes the curveball, slider, and slurve, but not the various kinds of fastball and change-up or trick pitches like the knuckleball. (베이스볼 레퍼런스)
- off-speed pitch: An off-speed pitch is a pitch that is not thrown with full velocity (i.e. not a fastball or slider). Off-speed pitches include breaking pitches, but also change-ups and even "trick pitches" like the knuckleball or the eephus pitch. (베이스볼 레퍼런스)
요약하자면 패스트볼은 공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최대한 덜 떨어지게끔 마그누스 효과를 주고자 백스핀을 걸어 빠른 회전수를 얻는 것에 목적을 두는 구종, 브레이킹볼은 의도적으로 회전축과 방향을 이용해 궤적의 꺾임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는 구종, 그리고 오프스피드 피치는 이 두 방법 중 어느 것을 이용하든, 의도적으로 속도와 회전수를 낮춰 스윙 타이밍을 빼앗는 것에 목적을 두는 구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보시면 문득 의문이 드는 점이 있으실 겁니다.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은 모두 ‘볼’로 끝나지만, 오프스피드 피치는 굳이 볼이 아닌 ‘피치’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프스피드 피치는 별도의 사전적 정의가 없습니다.)
이는 결국 오프스피드 피치는 뭉뚱그려 하나의 구종이라고 하기보다는 공을 던지는 ‘방법론’의 차이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결국 오프스피드 피치는 의도적으로 회전축과 방향을 설정하여 그 방향으로 최대한 많은 회전을 주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패스트볼이나 브레이킹볼과는 달리 이 두 구종을 던지는 방법론을 가져가되, 의도적으로 스피드와 회전수를 줄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방법론입니다.
결국 ‘직구와 변화구’라는 단순한 구분법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패스트볼과 다른 스피드와 회전, 궤적 등을 보이는 오프스피드 피치 역시 구종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야구계의 실정이며, 이 또한 ‘물리 법칙’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니 구종이라고 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일단 “포크볼”은 탑스핀이 맞다
최근 뜨겁게 논란이 되는 포크볼 논쟁은 포크볼이 탑스핀을 주는 공이 맞냐 아니냐를 놓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포크볼은 탑스핀을 주는 것이 중론이라는 게 야구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논쟁에 불씨를 지핀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KBSN스포츠 채널에서 진행하는 <야구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프로에서 포크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현역 시절 포크볼을 주력 구종으로 사용한 조정훈 마산용마고 코치와 윤희상 해설위원을 패널로 초빙하여 담화를 진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논란이 된 것이 조정훈 코치가 포크볼에 대해 제대로 된 이론적 설명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윤희상 위원이 사이드 스핀이라는 용어를 몰라서 그런 건지 ‘원래는 공을 던질 때 백스핀을 줘야 하지만, 자기가 던지는 포크볼은 UFO 회전을 줘야 한다’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습니다.
이는 포크볼을 던지는 목적과 원리를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저 역시 현재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야구개발부 VP로 있는 마이크 패스트가 남긴 이 칼럼을 인용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포크볼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 ‘불릿’ 조 부시가 처음으로 고안해 낸 구종입니다. (Wood, Allan (2000). Babe Ruth and the 1918 Red Sox. San Jose: Writers Club Press. p. 372. )
그 후 1950년대에 들어 로이스 페이스가 조 부시의 포크볼을 더욱 가다듬고 개량하여 포크볼이라는 구종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SI STAFF, VAULT (JUNE 24, 1963). "THE FORK BALL AND ROY FACE")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포크볼을 던짐에 있어 일반적인 구종처럼 공을 채는 것이 아니라 ‘텀블링’을 통해 공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감’을 의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구종의 ‘창시자’이자 ‘개발자’들이며, 당연히 이들의 의도와 사용 원리에 따라 정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 애초에 이 문헌들조차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은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충분한 문헌 및 연구 자료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여하튼 벌린 손가락 사이에서 공을 끼운 상태로 텀블링을 주려면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공을 손목으로 채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앞으로’ 꺾고 이 상태에서 팔 스윙만으로 공을 빼는 것입니다.
이러면 공이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회전은 패스트볼이나 브레이킹볼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고, 공의 회전축은 지구 자전축처럼 좌우로 도는 것이 아닌 자동차 바퀴처럼 아래에서 위로 돌게끔 이루어집니다.
즉 포크볼은 원래 설계된 대로 던진다면 ‘탑스핀’이 걸리는 것이 맞습니다.
포크볼의 궤적이 커브처럼 크게 형성되는 이유도 바로 이 탑스핀 때문입니다.
공의 회전이 아래에서 위로 돌면서 공의 상층부에서 와류를 생성하고, 공기 저항을 받으면서 공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커브와의 차이점은 커브는 의도적으로 탑스핀을 주면서 공을 더 빠르고 느리게 떨어지게끔 유도하지만, 포크볼은 탑스핀이 들어가되, 회전을 최소화시키기에 커브와는 떨어지는 시점과 궤적, 무브먼트 등에서 받는 공기 저항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요약하자면 포크볼의 목적이 '탑스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포크볼을 의도한 바대로 정확하게 던지려면 탑스핀이 '수반'되는 것이 맞습니다.
즉 정통적인 의미의 “포크볼”을 던진다고 했는데 만약 백스핀이 걸린다면, 이건 손목의 각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므로 공이 덜 떨어지는 실투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마이크 패스트의 칼럼에서 정통 포크볼의 예시로 든 선수가 세 명 뿐이라는 이유로 표본이 부족하다는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은 구종을 정의하는 바가 '물리 법칙'이라는 대전제를 일단 부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드릴 길이 없습니다.
애초에 2010년대에 이미 포크볼이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해당 칼럼에서 예시로 들 수 있는 선수가 적은 것은 당연한데, 이를 표본 부족이라는 이유로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은 여론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자들이 조정훈의 포크볼 움짤을 들고 조정훈은 ‘자이로’ 스핀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던지는 방법에서 애초에 자이로를 위해 슬라이더처럼 시계방향으로 공을 긁는다기보다는 조정훈의 손목이 온전히 다 꺾이지 않고 중지에서 공이 걸려서 나오기 때문에 나오는 습관으로 봐야 합니다.
애초에 포크볼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의도적으로 자이로 스핀을 주는 것은 손해입니다.
자이로 스핀의 대표격 구종인 종 슬라이더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예리한 각을 유도하기 위해 많은 회전수를 걸어야 하는데, 포크볼처럼 적은 회전수를 유도하는 구종에 구태여 스핀을 의도적으로 '추가'하는 것은 손해입니다.
2. 그럼 센가 코다이, 사사키 로키는? - “스플릿 체인지업”의 재정의 필요
이미 여기서부터 크게 거세하고 반발하실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실제로 ‘백스핀’으로 포크볼을 던지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가장 유명한 센가 코다이는 물론이거니와 현재 일본에서 핫한 사사키 로키,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이 던지는 포크볼도 죄다 애초부터 백스핀을 거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또 복잡해집니다만, 논쟁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한 만큼 짚고 넘어가긴 해야 합니다.
일본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은 1920년대이지만, 일본에 포크볼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로이스 페이스가 포크볼에 대한 연구를 거진 완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일 관계가 회복된 1950년대 이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에 대해 정확한 문헌 자료는 저도 찾지 못했습니다. 알고 계신 분은 제보 바랍니다.)
그리고 포크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기 이루어진 것은 1970~80년대로 추정되는데, 이때부터 무라타 쵸지 등의 포크볼 괴물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90년대에 사사키 가즈히로의 등장으로 포크볼은 일본프로야구의 정체성으로 확립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선수들은 신체 조건상 미국 선수들에 비해 포크볼을 원래 원하던 대로 던지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를 개량하기 시작하며 아예 조 부시와 로이스 페이스가 던지던 것과는 다른 원리의 구종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를 일본에서는 ‘반포크’라고 부르며, 던지는 원리는 손가락 사이에 공을 깊게 끼우는 것은 똑같되 텀블링을 거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마치 슬라이더처럼 꺾으면서 스플리터처럼 공을 채서 회전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백스핀이 아닌 사이드 스핀이며, UFO 타령하던 윤희상의 주장과 달리 정작 사이드 스핀을 형성하는 건 이 반포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사실상 이 반포크라고 하는 것이 일본식 포크볼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게 되고, 1988년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일본과의 야구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국내에도 이 구종이 전파되어 유행했습니다.
즉 국내에 들어온 포크볼은 애시당초 원조 포크볼이 아닌 다른 구종이라 할 수 있는 반포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구종’이라는 말에 의아하시겠지만, 저는 이 반포크를 포크볼과는 아예 ‘다른 구종’으로 봐야 한다고 의견 피력을 해보겠습니다.
앞선 챕터에서 언급했듯 포크볼의 목적은 텀블링을 걸고, 회전을 죽이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포크는 손목을 옆으로 꺾고 의도적으로 사이드-역회전을 걸어 떨어뜨리는 방식이므로 이는 아예 원리와 목적부터 다른 새로운 구종이라 봐야 합니다.
오늘날 구종 분류에서 ‘스플릿 체인지업’이라는 말이 사용되고는 하는데, 중지와 약지 사이를 벌리는 ‘벌컨 체인지업’만을 이 스플릿 체인지업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저는 반포크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벌컨과 반포크, 두 구종의 목적과 원리가 같고, 단지 벌리는 손가락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면 이것은 같은 구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선 이미 상기 첨부한 카슨 풀머의 사이드 스핀을 활용한 변형 스플리터를 스플릿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고 있기도 한데, 구종의 오용과 이해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정의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3. 스플리터는 포크볼이 아니며, “패스트볼” 혹은 “체인지업”이다
챕터2에서 언급했듯 스플리터와 포크볼의 용어 혼용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예 두 구종은 던지는 원리와 목적이 다릅니다만, 그놈의 “벌렸죠? 스플리터예요.” 발언 때문에 국내에서는 완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혹자들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혼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라이트 팬덤이나 이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송사에서나 그런 것이고, 현장이나 데이터 파트 쪽에서는 이들을 엄밀히 구분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포크볼이라는 구종 자체는 엄밀하게 따지면 해외 야구 시장에서 ‘사장’된, 죽은 구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일본은 포크볼이 여전히 주요 구종이라고 또 반론하실 분들은, 챕터2를 다시 읽고 오시면 됩니다.
여하튼 스플리터는 포크볼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은 맞습니다.
1920년대에 조 부시가 포크볼을 던졌을 때 여러 선수가 이를 배우려 시도했으나 자연스러운 탑스핀 텀블링을 주며 던지기 어렵다 보니 그다지 성행하진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James, Bill; Neyer, Rob (June 15, 2004). "The Forkball Fast and Slow". The Neyer/James Guide to Pitchers: An Historical Compendium of Pitching, Pitchers, and Pitches. Simon and Schuster. pp. 45–51.)
한편 1970년대 경 프레드 마틴이 포크볼의 그립을 이용해 조금 덜 벌린 상태에서 텀블링이 아닌 백스핀을 걸어 패스트볼처럼 던지는 체인지업의 일환이 되는 구종을 개발하였고, 이를 전수받은 브루스 수터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이 구종을 완성시켰습니다. (Fimrite, Ron (September 17, 1979). "When This Pitch In Time Saves Nine". Sports Illustrated. Retrieved July 2, 2012.)
이것이 스플릿 핑거드 패스트볼, 즉 스플리터이며,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일본의 반포크와 미국의 스플리터는 아예 개발 과정과 목적의 방향성 자체가 달랐습니다.
여하튼 이 구종에 패스트볼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크게 2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의도적으로 백스핀을 주어서 던지는 구종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래의 무회전 공이 갖는 궤적보다 더 떨어지게 하는 의도가 아닌, 단순히 일반적인 패스트볼보다만 덜 떨어지게 하기 위해 회전을 ‘많이’ 거는 구종이라는 점입니다.
MLB의 일반적인 스플리터 회전수는 2200~2500RPM 정도이기에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기에는 의도적으로 거는 백스핀의 강도가 높은 것입니다.
또한 구속의 감소 역시 체인지업이라고 하기엔 적은 편으로, 2010년 MLB의 우완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2mph였던 반면에 스플리터는 85mph, 체인지업은 83mph였습니다. ("League Average PITCHf/x Data – TexasLeaguers.com". Texas Leaguers. Retrieved July 2, 2012.)
그러나 세이버매트리션들 사이에서도 구속의 차이로 스플리터를 패스트볼로 분류하는 것은 이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중론인 듯합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스탯캐스트 기록상 2023 시즌 기준 규정 이닝을 채운 선수들의 체인지업 평균 구속은 86.1mph이지만, 스플리터 평균 구속은 86.8mph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스플리터 평균 구속에 포크볼의 구속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실상 현재 MLB에는 앞서 얘기한 ‘포크볼’을 던지는 선수는 없다고 봐야 해서 그건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작 후지나미 신타로 같은 선수들의 고속 반포크 및 스플리터가 몇몇 선수들 사이에서 컬트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저렇게 잘 개량되어 맛있어 보이고 탐나는 구종들을 놔두고 미국에서 던지기도 어렵고 불편하며 위험도도 높은 포크볼을 쓸 생각을 안 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여튼 똑같이 스탯캐스트를 활용하는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경우 위와 같은 이유로 스플리터를 아예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자료를 조사하며 느낀 것은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저도 하나의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애매하다고 봅니다만, 스플리터의 목적과 이를 위해 사용하는 인체 역학적 움직임, 그리고 공의 궤적 및 로케이션과 회전수 등을 감안했을 때 스플리터는 싱커의 변형일 것이고, 즉 그 원류는 투심 패스트볼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저도 여지를 남겨두긴 하겠습니다.
4. 포크볼의 부상 위험성은 당연히 높다
이건 굳이 자세한 자료 첨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것조차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조정훈의 경우 그냥 혹사를 당한 것이 문제였지, 포크볼을 던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포크볼이라는 구종 자체의 위험성은 없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꽤나 많이 봤습니다.
조정훈 본인도 위에 첨부한 영상에서 "자신의 부상이 포크볼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윤희상 위원이 "100% 동의한다"라고 한마디 얹은 탓도 크다고 보는데...
(정작 같은 방송에서 박용택 위원은 사사키 가즈히로에게 직접 "포크볼의 부상 위험이 높다한들 그냥 몇 년 던지고 수술하고 반복하면 된다"라는 식의 가르침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도대체 그런 발언이 그들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생체역학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구종에 상관없이, 야구 선수의 투구 동작은 그 자체로 내측 인대에 충격이 누적되는 자세입니다.
특히 오늘날에 유행하는 투구폼은 몸의 회전력과 무게 중심을 적극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이고 간결하게 던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전신에 받는 데미지는 줄어드는 대신 팔꿈치의 데미지는 그대로 누적이 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임승길. (2007). 야구선수의 주관절 내측측부인대 손상과 예방. 코칭능력개발지, 9(3), 65-80.)
특히 이런 팔꿈치 내측 인대의 데미지 누적은 변화구를 던질 때 더 심각하게 들어갑니다.
의도적으로 손목을 꺾고, 손가락을 비틀고, 팔꿈치도 비틀어 던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의사들도 극히 일부 있습니다.
자신이 집도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강속구 투수였던 점을 역학 조사로 역추적해보면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이 더 데미지를 많이 준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WBSC에서는 위와 같은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고, 엄격히 적용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이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그닥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이 중에서도 이미 체인지업으로 완전히 대체되어 던질 이유가 전혀 없어진 스크류볼을 제외하면 가장 나중에 던져야 할 구종으로 분류됩니다.
그만큼 그 위험성을 연맹 차원에서 인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포크볼을 ‘올바르게’ 던지면 팔꿈치와 어깨 모두에 심한 손상이 간다는 것은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이미 중론이 되었습니다. (Chass, Murray (1988-07-17). "Notebook; Whatever It's Called, Forkball or Split-Fingered, It's Screwy". The New York Times.)
손가락 사이에 물건을 낀 상태에서 팔을 한번 휘둘러보기만 하면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 지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부상 위험도를 ‘최소화’하는 방향은 있을 수 있습니다.
포크볼을 던지는 상황에서 손목을 고정한 상태로 던진다면 텀블링 순간에 가해지는 충격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들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고 해서, 그리고 포크볼을 던지고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몇몇 반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크볼의 위험성을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 윤희상 위원이 야구의 참견 이전에 <옐로우카드3>에서 한 발언 역시 문제가 된 바가 있는데, 포크볼을 슬라이더와 같이 던지면 위험한 거지 그냥 던지는 건 괜찮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고 합니다.
... 도대체 근거가 뭔지 모르겠는데... 축이 되는 인대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슬라이더든 포크볼이든 내측 인대를 손상시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냥 애초에 슬라이더 자체가 인대 손상의 위험성이 높고, 포크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마냥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해설자가 과학적 분석이 결여된 자신의 '느낌'을 사실인 것처럼 전달해선 안 되며, 반드시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야만 하는데 그 점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그래도 스플리터와 포크볼의 차이를 인지는 하고 있고, 변화구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인지는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보면 윤희상 위원도 아예 느낌으로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보다 양질의 해설을 위해 공부를 조금만 더 해보심이 어떨지 싶습니다.)
참고로 커브는 52%, 슬라이더는 86% 가량 부상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Grantham WJ, Iyengar JJ, Byram IR, Ahmad CS. The curveball as a risk factor for injury: a systematic review. Sports Health. 2015 Jan;7(1):19-26. doi: 10.1177/1941738113501984. PMID: 25553209; PMCID: PMC4272688.)
5. 덧붙여서
어쩌다 보니 거진 숏폼 논문 형식을 띠게 되었습니다.
워낙 논란이 많이 되고 혼동이 되는 이야기이다 보니, 제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보고자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석을 하등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현장에서의 경험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는 줄로 압니다.
사람마다, 선수마다 경험이 다르고 최적화 방향이 다른데 이런 정해진 이론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이런 용어 정립과 연구가 야구의 다양성을 해치고 실력을 도태시킨다고 물타기를 시도하는 세력들입니다.
그러면 역으로 묻겠는데, 자동차를 일반 주행 중에 제동시킬 때 브레이크를 나누어서 밟는 정석적인 방법 외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다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아 세우는 것이 더 편하고, 그렇게 새웠더니 차가 더 확실하게 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럼 그 사람의 자동차 제동법이 ‘맞는’ 것입니까?
물론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이고, 저 역시 다양성의 존중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사람입니다. 당신들보다 훨씬 더 많이, 진실되게요.
알량하고 ‘틀린’ 지식을 어떻게든 뽐내고 싶어서 끝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공격하면서 이를 다양성이라고 참칭하지 마십쇼.
현장의 이야기가 과학적 분석과 전혀 다른 말이 나오고 있다면, 이건 이론이 틀리고 실전만 맞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현장에서 공부를 아예 안 하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는 게 문제였더만, 요즘은 틀린 것을 다른 거라고 우겨대는 문제로 더 심각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선수 여러분, 코치 여러분... 제발 공부 좀 하세요... 제발 쫌...
무엇보다 현장에서 이런 이론과 정의의 확립에 협조를 해줘야 할 판에 그냥 이론 싫어, 귀찮아 이런 반감 때문에 오로지 감에만 의존해서 혼란을 주는 건 뭘 어쩌자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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