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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이븐입니다.
지난 칼럼에서는 리그의 빗발치는 볼의 원인이 정말 투수들의 훈련 부족 탓이기만 한지를 살펴봤는데요.
2021.07.01 - [KBO] - 레이븐의 KBO 칼럼: 리그에 빗발치는 볼 - 투수들은 훈련 부족? 上편
상편에서의 결론은 "심판위원들이 트랙맨 기반 일관성 평가에서 감점을 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일관적으로 축소한 탓이 있지만, 보더라인 근처로 가지도 못하는 어림도 없는 볼도 함께 늘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과연 전혀 제구가 되지 않는, 완전히 빠진 볼들의 남용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해결책은 정말 강도 높은 훈련의 반복 뿐인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상편에서 언급했듯 스트라이크 존 축소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조차도 '일차적인 것은 투수들의 문제'라고 전제를 깔았는데, 보더라인에 걸치는 것이 아닌, 아예 벗어나는 공도 매우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크 존 자료들을 보시면 확연히 보이시겠지만, 보더라인 근처는 어림도 없이 아주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는 붉은 색 공들의 향연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공을 던져놓은 투수들이 스트라이크 콜 핑계를 댄다면 정말 민망할 일입니다.
혹자들은 변화구를 던지면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변화구도 보더라인에서 공 1개~1개 반을 넘어가는 공을 던지면 그냥 볼 카운트 하나를 날려먹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찾아보던 중,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렇게 완전히 버리는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대체로 선발 투수보다는 불펜 투수들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선발 투수들은 한 번의 등판 때마다 집중적으로 많은 공을 던지게 되면서 밸런스를 점차 찾아가고 영점을 잡아가고 있는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리그 절반이 지나간 시점, 2021 시즌의 팀 구원 WAR 하위권 성적을 보시면 롯데 2.24, 기아 2.40, 삼성 2.51로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한참 좋게 봐줘서 시즌 페이스를 현 시점 성적의 2배라고 쳐줘도, 4.5~5.0 사이를 기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페이스는 어디까지나 페이스일 뿐이고, 개인 성적이면 모를까 보통 팀 구원 WAR이 시즌 반이 지난 시점에서 2배씩이나 드라마틱하게 올라가는 일은 없으며, 이 성적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예년의 하위권 팀 구원 WAR 기록이 5.5 내외를 기록하는 것을 감안하면 1위인 LG만이 정상적인 기록이며, 나머지는 심각합니다.
유독 불펜 투수들에게만 이런 현상이 크게 나타난다면, 결국 '많은 공을 던지지 못한 탓'이 있긴 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 투수들은 정말로 지금부터 하드 트레이닝에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 동안 정말 3000개 씩 공을 던져야 하는 걸까요?
제 결론은 NO입니다.
위 영상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의 투수 혹사 논란을 다룬 영상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라는 의학 상식을 완전히 거스르는 코칭 기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김성근 감독이 여러 구단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코칭 방식이 리그에 만연하게 되었고, 2010년대부터는 그 후폭풍에 많은 구단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특히 201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버두치 효과'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김성근식 고강도 훈련, 연투, 멀티이닝 소화 강행군은 점차 리그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 2008년 2월 MLB 유명 칼럼리스트인 톰 버두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새로운 주장을 펼쳐 야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는 만 25세 이하의 투수가 그 전년도와 비교해 30이닝 이상 투구 이닝이 늘어날 경우 이듬해 부상을 당하거나 구위 저하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과정은 마라토너가 달리는 것과 유사하기에 갑작스럽게 투구 이닝을 늘리면 위험하다는 가설이다. 톰 버두치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2005년과 2006년 30이닝 이상을 초과해 던진 투수 17명 중 16명이 그 다음 시즌 부상을 당하거나 성적이 급격이 저하했음을 예로 들었다. 당시 MLB의 새로운 유망주로 떠올랐던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아니발 산체스, 구스타포 샤신, 애덤 로웬, 스캇 매티어슨 등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오직 저스틴 벌랜더만이 버두치의 이론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버두치 효과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자리잡아 왔던 고강도, 다회 반복식 훈련과 연투, 멀티이닝 소화를 기본 전제로 까는 불펜 투수 운용의 효용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가설입니다.
이 버두치 효과의 대상에 적용되는 투수를 이른바 '버두치 리스트'에 오르는 투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는 모습이 실제로 나타나자 KBO리그에서도 경각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성명 | 해당 년도 |
당시 소속팀 |
당시 나이 | 직전 년도 1+2군 소화 이닝 |
이전 년도 대비 증가 이닝 |
직전 년도 ERA | 해당 년도 결과 | 비고 |
함덕주 | 2018 | 두산 | 23 | 137.1 | 109 | 3.67 | 진보 67이닝 6승 3패 27세이브 ERA 2.96 |
불펜 전환, 2017 포스트 시즌 9.1이닝,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0.2이닝 |
박세웅 | 2018 | 롯데 | 23 | 171.1 | 32.1 | 3.68 | 적중 49이닝 1승 5패 ERA 9.92 |
포스트 시즌 4이닝,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3이닝,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
김원중 | 2018 | 롯데 | 25 | 111.2 | 42.2 | 5.7 | 적중 145.1이닝 8승 7패 ERA 6.94 |
포스트 시즌 2이닝 |
장현식 | 2018 | NC | 23 | 141.2 | 28.2 | 5.29 | 적중 26.2이닝 3승 2패 2세이브 ERA 7.43 |
포스트 시즌 11.1이닝,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5이닝, 2018 스프링캠프 때부터 각종 통증 호소 |
구창모 | 2018 | NC | 21 | 115 | 42.2 | 5.32 | 유지 133이닝 5승 11패 ERA 5.35 |
포스트 시즌 3.1이닝,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1.1이닝, 시즌 중간 선발 전환 |
임기영 | 2018 | KIA | 25 | 120 | 74 | 3.65 | 적중 105이닝 8승 9패 ERA 6.26 |
포스트 시즌 5.2이닝,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7이닝 |
최원태 | 2018 | 넥센 | 21 | 149.1 | 51.2 | 4.46 | 진보 + 적중 134.1이닝 13승 7패 ERA 3.95 |
9월 어깨 염증으로 시즌 아웃 |
김대현 | 2018 | LG | 21 | 105.2 | 67.1 | 5.36 | 적중 105이닝 2승 10패 ERA 7.54 |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1이닝 |
이영하 | 2019 | 두산 | 22 | 127.2 | 72.0 (130% 증가) |
5.28 | 진보 163.1이닝 17승 4패 ERA 3.64 |
포스트 시즌 5이닝 |
전상현 | 2019 | KIA | 23 | 130.2 | 99.2 (322% 증가) |
6.10 | 진보 60.2이닝 1승 4패 15 홀드 ERA 3.12 |
|
조한욱 | 2019 | kt | 23 | 92.1 | 53.1 (137% 증가) |
5.37 | 적중 58.0이닝 3승 4패 ERA 7.29 |
2017 1군 기록 없음 |
양창섭 | 2019 | 삼성 | 20 | 112 | 50.1 (124% 증가) |
5.05 | 적중 토미존 서저리 |
고교 리그 이닝 포함 |
윤성빈 | 2019 | 롯데 | 20 | 95.1 | - | 6.39 | 적중 0.1이닝 0승 0패 ERA 81.00 |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 |
김성훈 | 2019 | 한화 | 21 | 105 | - | 3.58 | 적중 22.1이닝 1패 ERA 4.84 |
|
이영하 | 2020 | 두산 | 23 | 178 | 50.1 (39.4% 증가) |
3.64 | 적중 132이닝 5승 11패 6세이브 ERA 4.64 |
포스트 시즌 5.2이닝, 프리미어12 9.1이닝 포함, 시즌 중 불펜 전환 |
원태인 | 2020 | 삼성 | 20 | 122.1 | 50.1 (126% 증가) |
4.82 | 유지 140이닝 6승 10패 ERA 4.89 |
고교 리그 이닝 포함 |
최채흥 | 2020 | 삼성 | 25 | 121.2 | 71.0 (170% 증가) |
4.81 | 진보 146이닝 11승 6패 ERA 3.58 |
|
김민 | 2020 | KT | 21 | 150.2 | 91.2 (65% 증가) |
4.96 | 적중 42.2이닝 3승 3패 1홀드 ERA 6.54 |
시즌 중 불펜 전환 |
배제성 | 2020 | KT | 24 | 131.2 | 112.2 (593% 증가) |
3.76 | 유지 141.1이닝 10승 7패 ERA 3.95 |
|
김범수 | 2020 | 한화 | 25 | 102.2 | 38.2 (60% 증가) |
5.61 | 적중 55이닝 3승 6패 ERA 5.24 |
고관절 통증으로 재활 |
서준원 | 2020 | 롯데 | 20 | 103 | 54.2 (113% 증가) |
5.47 | 유지 107.2이닝 7승 6패 ERA 5.18 |
고교 리그 이닝 포함, 시즌 중 불펜 전환 |
박주홍 | 2020 | 한화 | 21 | 127 | 58.2 (116% 증가) |
7.98 | 적중 24.1이닝 5패 ERA 8.39 |
호주 프로야구 질롱 코리아 39.0 이닝 포함 |
이승호 | 2020 | 키움 | 21 | 137.1 | 92.1 (204% 증가) |
4.48 | 적중 118.2이닝 6승 6패 ERA 5.08 |
포스트 시즌 11.2이닝, 프리미어12 3이닝 포함 |
소형준 | 2021 | KT | 20 | 142 | 91.1 (180% 증가) |
3.86 | 적중 예상 | 고교 리그 이닝, 포스트 시즌 9.0이닝 포함 |
이민호 | 2021 | LG | 20 | 104 | 53.1 (105% 증가) |
3.69 | 적중 예상 | 고교 리그 이닝, 포스트 시즌 3.1이닝 포함 |
송명기 | 2021 | NC | 21 | 110 | 51.2 (89% 증가) |
3.70 | 적중 예상 | 포스트 시즌 6이닝 포함 |
상기 표는 2018년부터 누적되어 온 KBO의 버두치 리스트입니다.
한눈에 봐도 적중률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이닝 이상의 투구 이닝 증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준하는 투구 동작 반복이 끼치는 영향입니다.
위의 사례들은 대부분 선발 투수이지만, 불펜 투수 역시 기준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불펜 투수가 등판하기 위해서는 당일 경기 전 훈련 소화는 물론, 몸을 풀기 위한 불펜 피칭, 그리고 등판해서 가져가는 피칭까지 도합하여 1이닝을 던지기 위해 100개 정도의 공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셈입니다.
선동열 전 감독이 주장한 '3000개 투구론'을 이에 대입하면, 정확히 버두치 리스트의 기준점인 30이닝 이상이 3000 개 투구에 들어맞게 됩니다.
이제와서 다시 케케묵은 3000개 투구론을 들고 나온다는 건 버두치 효과를 깡그리 무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나, 버두치 효과는 예외는 있을지언정 매우 많은 실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절대 무시해선 안될 가설입니다.
선동열 전 감독이 3000개 투구론을 들고 나왔을 때는 "나이 많은 투수들에게는 이 방법이 매우 위험하지만, 젊은 투수들에게는 많은 공을 던지게 하여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젊은 투수들에게 더 위험한 상황이 된 셈입니다.
선동열 전 감독이 3000개 투구론을 주창하던 시절은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현대 야구에 대한 연구를 지금처럼 깊게 파고들던 당시가 아니며, 선 감독 역시 자신의 지도 방식이 잘못되어 왔음을 인정하고 최근 적극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 연구를 하면서 칼럼 기고와 서적 출간까지 진행하였습니다.
투수가 교정이 필요할 때는 많은 노력으로 최상의 밸런스를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력투구 3000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자,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와 함께 현대 야구계에서 화두로 오르고 있는 것은 '바이오메카닉' 피칭 이론입니다.
사실 바이오메카닉 피칭 이론은 현대 야구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며, 톰 하우스를 비롯한 올드스쿨 MLB 트레이너들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어 온 연구입니다.
특히 톰 하우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평가받는 놀란 라이언과 함께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롱런할 수 있고, 가장 위력적인 피칭 밸런스를 끝없이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드라이브라인(Drive Line)'이라고 불리는 훈련법입니다.
드라이브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훈련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널리 적용하고 연구한 트레이닝 센터의 이름인 '드라이브 라인 센터'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드라이브라인 훈련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치 디자인: 구종 배합 및 로케이션 설정, 피치 터널 형성에 대한 훈련. 트랙맨과 랩소드 등의 장비 동원
- 부상 후 기량 회복: 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최대한 이전과 같은 폼과 밸런스를 찾을 수 있도록 훈련
- 인체 역학 분석: 구속 및 회전수 증가, 커맨드 능력 향상 등을 위한 폼 수정 및 밸런스 강화 훈련
이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훈련법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마당에 굳이 어리석게 3000개의 불필요한 공을 더 던져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야구도 한층 더 발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나 원로, 언론 기자들 및 여러 스포츠 관계자들이 구시대적 발상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식 훈련을 강요하는 것은 한국 프로야구의 너무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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