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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 Study/Philosophy

[유학] '예(禮)'를 바라보는 유학의 두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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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레이븐입니다.

해당 포스트는 제가 2018년 무렵까지 운영했던 네이버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 옮겨온 글입니다.

당시 네이버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문체는 티스토리와는 달리 존대 없는 문어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아카이빙 과정에서 별도의 수정 과정은 거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라며, 혹여 네이버 블로그를 방문하실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네이버 블로그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는 않으며, 아카이빙 된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차례로 삭제할 예정입니다.)

 

BLACKEST BLACKIST : VI VERI VENIVERSUM VIVUS VICI : 네이버 블로그

Till Death Unites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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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학에서 '예(禮)'가 갖는 중요성

공자의 '극기복례위인'은 단순히 예의범절을 따르라는 것이 아닌, '주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예(禮)는 유학자들이 인(仁)과 함께 매우 중시하는 개념이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인은 관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예는 현상적으로 그 관념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도록 행하는 양식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행함으로써 추상적이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인이라는 개념에 최대한 근접한 모습에 다가가고 유지하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군자(君子)의 기본 자세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자는 인간의 교양적 측면에서 예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덕치(德治)와 결합하여 예의 정치적 효용성을 주장하였다.(각주1) 공자는 도덕과 예를 통한 교화를 중시하였으며 주례(周禮)로의 회귀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안연에게 인에 대해 설명할 때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주장한 것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주공'이라 불리는 희단은 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며, 유학에서 말하는 '예'의 집대성자이다.

유학에서 인간의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성인(聖人)의 개념에서도 예는 상당히 중요하다. 성인에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우선 예의 창작자라고 볼 수 있다. 성인이란 예를 만들어 문명을 창시하거나 정비하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학에서는 예를 요, 순, 우, 탕왕, 문왕, 무왕 등에 의해 만들어졌고 주공에 의해 대성되었다고 본다. 순자는 예의 기원자들 중 탕왕까지를 선왕(先王)이라 칭하였다.(각주2) 그리고 상대적으로 당대로부터 가까운 과거의 인물인 문왕, 무왕, 주공 등을 후왕(後王)이라 칭하였다.(각주3)


다음으로 성인에게는 예의 체득자라는 의미가 있다. 예는 사회의 여러 관행을 제도화한 것이기 떄문에 규범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성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예를 필수적으로 체득하여야 한다. 이것이 유자(儒者)의 의무이자 목표인 셈이다. 따라서 예를 체득하는 군자는 원칙주의자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옳은 것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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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에 대한 맹자의 해석

맹자는 현대까지도 공자의 적통으로 여겨지지만, 예에 대한 그의 해석은 공자의 뜻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맹자는 자사와 자신이 공자의 적통임을 주장하였고, 한대 이후로는 이러한 주장이 정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 유학은 맹자의 사상에 대한 주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맹자는 공자가 인이라고 부르고 예를 실천하는 인간의 주체성에서 발견한 인간의 덕성을 인간이 갖추고 있는 하늘의 목적을 지닌 법칙성으로 생각하고 이를 인간의 본성이라 하였다. 인간의 성을 선한 것이라 주장하며 맹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사단(四端)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 중에서 인은 측은지심, 예는 사양지심에서 우러나온다.(각주4) 결국 맹자가 해석하는 예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맹자는 예가 인의의 확충 수단이라는 자신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단의 개념을 적용하였고, 이러한 해석이 송대까지 이어져 주자에 의해 사단칠정론으로 정리된다. 퇴계 이황도 <성학십도>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분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인성론을 전제로 하여 맹자는 예를 인의(仁義)의 확충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타고난 본성을 확충하는 수단이자, 결국 인으로 귀결되는 바이다. 맹자의 예론은 공자의 인과 의 개념의 실질적인 내함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논리였다. 인의를 중시한 맹자였기에 인의에 대한 언급에 비해 예에 대한 언급은 많이 부족하였으며, 이로 인해 맹자를 예에 대해 소홀한 사상가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인의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유학의 행동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부분은 맹자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맹자 스스로 사단을 제시하면서 예 역시 인의와 마찬가지로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내부의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는데, 그 논리에 따르면 예 역시 인의와 함께 선천적인 지향성에 의해 성취되어야 하는 바이지만 정작 예에 대한 언급은 인의에 비해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3. 맹자에 대한 순자의 비판과 순자가 해석한 예

흔히들 순자를 단순히 '성악설'로만 알고 있는데, 순자가 인간의 덕성을 완전히 부정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크나큰 오해이다. 

맹자는 공자가 예를 실천하는 인간의 주체성에서 발견한 인을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는 하늘의 목적을 가진 법칙성이자 하늘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였다. 순자 또한 인간의 덕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채내의 5관을 통제하는 자율심을 '천관(天官)'이라 부르고 이를 선을 이루는 주체라 여기며 중시하였다.(각주5) 순자가 성악(性惡)을 정악(情惡)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이에 있다. 하지만 순자는 인간에게 선이 되려는 자율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고 하며 맹자를 비판한다. 이미 선이 내재된 인간이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배우려 한다는 것과 본성이 내버려두면 악이 된다면서 자연적으로 선하다는 맹자의 주장이 갖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순자가 단순히 맹자의 자가당착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만 인간의 본성을 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욕망의 추구, 이익을 좋아하는 성질, 질투와 미움의 감정 등으로 보았다.(각주6) 순자는 이러한 욕망을 길러 직분을 깨닫고, 성을 변화시키며, 선에 해당하는 위(僞)를 일으키고, 이를 바탕을 예의와 법도가 세워진다고 하였다.(각주7) 따라서 순자에게 예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발현되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올바르게 기르기 위한 원칙이자 이미 올바름에 도달한 사람이 그렇지 아니한 사람의 욕망을 길러주기 위해 만들어 내는 유산인 것이다.


순자의 이러한 예의 해석에는 정치적으로 예치(禮治)를 수반하게 된다. 성왕(聖王)이 만들어 낸 제도이자 문리(文理)로서 예는 사회의 유지 수단이자 인간의 교육 수단이 된다. 분별을 통해 욕망을 길러내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것이 나아가면 법가(法家)의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순자는 이러한 부분을 우려하였다. 순자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법은 예의를 바탕으로 세워져야하지 법이 모든 것에 앞서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치에 있어서 순자는 나라를 다스리고 명분을 정하는 것은 치도를 완성하기 위함이며, 역사 문화 속에 치도의 근본이 있으므로 공허한 말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순자는 선왕을 본받을 것을 중시한 맹자와는 달리 후왕을 본받을 것을 피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순자가 선왕을 본받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선왕의 도는 역사가 오래되어 구체적이지 않지만 후왕의 도는 예의와 법도가 명백히 갖추어져 검증할 수 있고, 역대 제왕의 예법을 근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후왕의 도를 본받지 않고서는 선왕의 도를 본받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각주8)


4. 예를 바라보는 두 관점에 대한 필자의 생각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성현의 해석 중 순자의 해석이 공자의 '극기복례위인'을 더 잘 이해하고 계승했다고 판단한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유학에 있어서 예의 중요성은 상당히 강조되는 바이다. 예는 유자의 행동 원칙이자 인의 발현 수단이며 성인의 유산이다. 따라서 예는 인이나 의만큼이나 유학에서 상당히 중요하며, 예에 대한 공부와 실천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맹자는 사단의 개념을 내세우며 예를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내부의 것으로 보았으면서도 동시에 예를 인의의 확충 수단으로 보면서 그 중요성을 부각하지 못하였다. 또 선천적으로 지향되는 본성에서 출발하는 예를 역시 본성에 내재한 인과 의의 확충 수단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수용하기 어렵다. 인의의 중요성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유학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에 대한 설명은 아쉽게 남긴 듯하다.


반면 순자가 설명하는 예는 아주 논리정연하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행동 원칙으로서의 예가 갖는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에 선에 해당하는 위가 세워진 바탕에 예의와 법도가 들어서게 된다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하였다. 분류와 분석, 논증을 중시한 순자에게 있어서 맹자의 인성론과 예에 대한 해석은 인정할 수 없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가 맹자를 그토록 비판하며 공자의 적통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 일면 이해가 간다.


이렇게 순자의 예론은 논리적인 결함을 찾기 힘들며 예의 실현 방법에 대한 설명 역시 명확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가 공자의 적통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순자는 이단으로 취급되고 순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부분이다. 『순자』를 강독하고 있노라면 비단 예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귀에서 순자의 분석적 사고와 논리적 작문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순자에 대한 문헌은 맹자에 대한 문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맹자가 무조건적으로 비논리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수천 년간 한 사람의 논리만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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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우치야마 도시히코, 석하고전연구회 역, 『순자교양강의』, p.141, 돌배게, 2013. "인도하기를 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로 한다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또 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논어』 「위정」)"
2) 순자, 이운구 역, 『순자 2』, 「예론(禮論)」, p.117~118, 한길사, 2014. "예는 어디에 기원하는가. 말하기를 사람은 나면서 욕망을 갖는다. 욕망을 가지고 얻지 못하면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구하면서 기준과 한계가 없으면 다투지 않을 수 없다. 다투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우면 궁해진다. 선왕은 그 어지러움을 싫어한다. 그래서 예의를 제정하여 구분을 짓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욕망을 기르고 사람의 욕구르 채우며 욕망으로 반드시 사물에 궁하지 않게 하고 사물의 욕망에 굴하지도 않게 하여 양자가 서로 버티며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3) 채인후, 천병돈 역, 『순자의 철학』, p.163, 2009. "사실, 삼대(三代) 이전 뿐만 아니라, 삼대 때인 하우(夏禹)·상탕(商湯) 또한 상당히 오래된 과거이다. 그래서 "우왕과 탕왕 시대의 정치가 비록 전해 내려오기는 하였으나, 주나라 떄의 정치처럼 자세하지는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순자가 말한 '후왕'이란 주대(周代)의 문왕·무왕·주공이다. '후왕을 본받다'라는 것은 바로 주나라를 본받는다(法主)는 것을 의미하며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는 공자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4)『맹자』, 「공손추 上」 "측은한 마음은 인(仁)의 실마리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실마리요,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실마리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실마리이다." (재인용 : 풍우란, 정인재 역, 『간명한 중국철학사』, p.114, 2014.)
5) 순자, 이운구 역, 『순자 2』, 「천론(天論)」, p.71~72, 한길사, 2014. "(전략) 귀와 눈, 입과 코, 살갗은 각각 접촉하는 데가 따로 있어 설 함께 기능하지 않으니 바로 이를 일컬어 천관이라고 한다. (중략) 성인은 그 천군을 맑게 하고 그 천관을 바르게 하며 그 천양을 갖추고 그 천정에 순응하며 그 천정을 잘 길러서 천공인 자신을 온전하게 갖는다. (후략)"
6) 순자, 이운구 역, 『순자 2』, 「성악(性惡)」, p.215, 한길사, 2014.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 선한 것은 위(僞)이다. 이제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 이득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이를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시새우고 미워하게 되어있다. 이를 따르기 때문에 잔악이 생기고 충직, 성실한 마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귀나 눈이 아름다운 소리나 색깔 보기를 좋아하게 되 어 있다. 이를 따르기 때문에 음란이 생기고 예의 문리는 없어진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대로 따르고 사람의 감정대로 따른다면 반드시 쟁탈하는 데 나아가 범절을 어기고 도리를 어지럽히는 데 알맞아 포악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법(師法)의 교화와 예의의 지도가 있은 연후라야 사양하는 데로 나아가 도리에 알맞고 다스려지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바로 사람의 본성이 악함은 분명하다. 그 선한 것은 위이다. (후략)"
7) 순자, 이운구 역, 『순자 2』, 「성악(性惡)」, p.219~220, 한길사, 2014. "묻는 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면 예의가 어떻게 생기는가'라고 한다. 이에 응답하여 말하기를 '(중략) 예의와 법도라는 것은 바로 성인의 '위'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부터 사람의 본성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중략) 그래서 성인이 '성'을 변화시켜 '위'를 일으키고 '위'를 일으켜서 예의가 생기고 예의가 생겨서 법도를 마련하였다. (후략)"
8) 채인후, 천병돈 역, 『순자의 철학』, p.164, 2009. "첫째, 후왕의 예의와 법도는 명백하게 갖추어져 있으므로 검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도를 논하는 자는 주대의 문화를 근거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상고 시대를 알고 싶으면 주나라 때의 예법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말에서 '주나라 예법'(周道)은 바로 후왕의 도로서, 역대 제왕의 예법을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다. 선왕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후왕의 도에서 찾아야 하며, 후왕의 도를 버리고 선왕의 도를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역대 제왕의 도는 후왕의 도와 같다"고 말하였다. 순자의 이러한 견해는 공자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후략)"


<참고 문헌>

순자, 이운구 역, 『순자 2』, 한길사, 2014.
우치야마 도시히코, 석하고전연구회 역, 『순자교양강의』, 돌배게, 2013.
채인후, 천병돈 역, 『순자의 철학』, 예문서원, 2009.
풍우란, 정인재 역, 『간명한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2014.
김성원, 『정본 맹자집주』, 명문당, 1993.
이강수,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 지식산업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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