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ing/Literature

레이븐 단편선: <정의상실의 정의상실>

728x90
반응형

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레이븐입니다.

해당 포스트는 제가 페이스북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부관리자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글들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 옮겨온 글입니다.

문체는 티스토리와는 달리 경어체와 문어체를 섞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카이빙 과정에서 별도의 수정 과정은 거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라며, 혹여 해당 페이지를 방문하실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인문학적 개소리 페이스북 페이지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는 않으며,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전을 할 예정입니다.)

 


 

*주의: 본작에 나오는 인명 및 지명은 실제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문래동 메탈시티를 지나 영등포역으로 가는 허름한 골목,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비주얼, 마치 강남 재개발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이 골목길에, 거리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 하나 보인다.

<정의상실>

점포의 불은 꺼져 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으나 가게 앞 인형뽑기 기계만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이미 점포의 수익은 모두 저 인형뽑기에서만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예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이곳에 한 젊은이가 발걸음을 옮긴다.

 

  ".....아저씨."

 

후드를 뒤집어 쓴 젊은이가 나지막히 속삭이고는 문고리를 잡아제껴본다.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지만 젊은이는 동요하지 않는다. 이내 젊은이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는, 기합과도 같은 단발의 호흡과 함께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영업 안 합니다...."

 

의상실 내부는 어둠침침하며, 안테나식 브라운관 티비만이 천장에 가까운 높이에 매달려 지지직대고 있다. 벽쪽에는 옷걸이와 의상들이 줄지어 늘어져있는데, 평범한 옷들이 아닌 라텍스 소재의 타이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안쪽 방으로 보이는 곳에는 날씨와는 맞지 않는 두툼한 야상을 입은 노인 둘이 섯다를 치고 있지만 소리는 크게 내지 않고 있으며,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은 재봉틀이 놓인 책상 앞에서 안락의자에 앉은채 젊은이 쪽을 응시 중이다.

 

  "....아저씨."

 

젊은이는 입구에서 했던 것과 같이 나지막히 한마디를 내뱉는다.

 

  ".....영업 안 합니다...."

 

같은 말만 반복하는 주인장 노인이었다.

 

  "언제까지 돈도 안 되는 코스튬 수선만 하실 겁니까?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셔야죠."

 

젊은이는 조금 전과는 달리 목에 힘을 주어 말하지만 노인은 들은 체도 안 한다.

 

  "세상이 혼탁합니다. 윤리는 거꾸로 뒤집어졌고, 오직 이익만이 판을 치는 마당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아저씨같은, 우리같은 이들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걸 왜 애써 무시하십니까?"

  "...."

 

노인은 심기가 불편한 듯 젊은이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돌아오세요. 아저씨가 필요한 세상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닥쳐!"

 

주인장 노인이 소리치자 안쪽방 화투놀음도 잠시 멈춘다.

 

  "뭐? 내가 있어야 할 곳? 우리? 고작 그따우 개소리나 지껄이러 온 게냐?!"

 

주인장 노인의 목소리가 커지자 젊은이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래, 니 말대로 세상은 물구나무를 섰다. 윤리는 개나 줘버리고, 이익이 인지상정을 집어삼킨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 뭐? 그런 세상이 날 필요로 한다고?! 지랄하지 말라그래!! 날 이곳에 가둔 건, 다름 아닌 니가 주장하는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주인장 노인은 분노가 치미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는 이 의상실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실상 갇혀 지낸지 수십년 째이다.

 

  "....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젊은이는 다시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뗀다.

 

  "....코드 네임 유스티니안, 세상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밖으로 나올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까?"

 

그렇다. 코드 네임 유스티니안(Justinian). 그는 한때 세상을 지키던 요원이었다.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내외의 악을 멸하기 위해 조직된 수퍼 솔져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그의 성공으로 수퍼 솔져 프로젝트는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그 결과 1개 사단급 규모의 수퍼 솔져 군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수퍼 솔져들을 악용하려는 전 세계의 정치 세력의 공작은 끊이질 않았고, 이들에게 속아 넘어간 세력과 정의를 지켜보겠다고 남은 세력 간의 내전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결과는 기존의 연합 세력의 승리였지만, 소모전은 극심하였고, 결국 국제 연합 상임 이사국들은 수퍼 솔져 프로젝트를 완전 폐기하기로 합의, 남은 솔져들은 모두 냉동 보관 혹은 사살 처리 되었지만 유스티니안만큼은 '정의상'이라는 위장 신분으로 한국에 숨어들어 혹여라도 살아남은 수퍼 솔져들의 의상을 수선해주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테오도라(Theodora)..... 날 화나게 했다간.... 너도 용서 않는다....."

  ".....흐....흐흐.....후후후.......크크크크크킄....."

  "????(뭐야 이 씹덕같은 웃음은?)"

  "그렇단 말이지....?"

 

씹덕같은 웃음소리를 제끼고 한줄기 섬광이 번뜩이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섬광은 안쪽 방을 향해 날아갔고, 화투판 노인들은 섬광을 향해 화투장을 내던진다. 화투장에는 싸이킥 에너지가 실려 광속으로 날아가 섬광에 부딪힌다. 폭★8과 함께 노인들은 젊은이에게 달려들지만, 이내 날아온 여덟발의 섬광에 노인들은 순식간에 산화되고 만다.

 

  "이....이게 무슨 짓이냐, 테오도라?! 흡!!!"

 

보랏빛 섬광에 둘러싸인 젋은이의 손이 주인장 노인의 심장을 관통한다. 싸늘한 웃음을 짓는 젊은이의 눈에서 보랏빛 광채가 흘러나오는 걸 깨달은 유스타니안은 아연실색하고 만다.

 

  "그래....세상은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래서 당신은 세상에 있으면 안 돼.... 지금까지 이곳에 잘 짱박혀 있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제 내가 자유롭게 해줄게...."

  "테...테오도ㄹ......"

 

유스티니안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진다. 유스티니안은 자신의 능력과 함께 영혼마저 테오도라의 손으로 빨려가는 것을 느끼고 절망하지만 그 의식마저 희미해져간다. 점점 말라가는 유스티니안의 육신을 보며 미소하던 테오도라는 싸늘한 한마디를 귀에 남기며 심장에 담궜던 손을 빼낸다.

 

  ".....Long live the King."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포스트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좌측 하단의 공유 기능을 이용해 SNS로 이 글을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