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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iterature

레이븐 단편선: <신원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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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레이븐입니다.

해당 포스트는 제가 페이스북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부관리자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글들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 옮겨온 글입니다.

문체는 티스토리와는 달리 경어체와 문어체를 섞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카이빙 과정에서 별도의 수정 과정은 거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라며, 혹여 해당 페이지를 방문하실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인문학적 개소리 페이스북 페이지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는 않으며,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전을 할 예정입니다.)

 


2021.08.19 - [Writing/Literature] - 레이븐 단편선: <정의상실의 정의상실>

 

레이븐 단편선: <정의상실의 정의상실>

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

raven-deadwire.tistory.com

(* 해당 포스트는 상단 첨부한 <정의상실의 정의상실>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주의: 해당 지명과 인명은 실제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마도?)

 

문래동 메탈시티를 지나 영등포로 들어가는 길목, 수없이 늘어선 철물점 골목촌을 지나면 구룡성채마냥 콘크리트 가층 건물을 이어 붙여 만든 기괴한 형태의 상가가 눈에 띈다. 어두운 황동색 금속틀과 모자이크 처리된 유리로 된 문을 젖히자 끼이익 하는 기름칠 전혀 안 된 마찰 소리가 귀를 찌른다. 안쪽으로 늘어선 것은 중고 컴퓨터들과 최소 60년도 더 되어 보이는 망가진 가전제품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기계의 무덤들. 이 기계의 무덤 사이를 비집고 계단을 올라 건물 깊숙이 들어가면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신원세탁’

겉보기에는 평범한 세탁소. 하지만 간판 외에는 어떠한 안내문구도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콤퓨타 세탁이네 드라이크리닝이네 하는 문구마저도 없고 그저 간판과 가게 앞의 옷걸이 정도만이 이곳을 세탁소라고 짐작케 한다. 세탁소에서 흔히 들어볼 수 있는 아이롱의 스팀 소리도, 공업용 드럼세탁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세탁소. 문이 열리자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안락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가 흠칫 놀라 깨어난다. 주인장은 고객을 쳐다보지도 않고 후다닥 일어나 옷매무새를 만지고 다림판 쪽으로 달려가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어서오슈. 이 동네 요즘 조용해서 손님이 있을까 했는데, 허허... 뭐, 어떤 거 봐드릴까?”

 

다림판을 대충 정리하며 인사말을 마친 주인장은 고객을 돌아보다 안색이 변한다.

 

  “‘안쪽’ 일 좀 봐주실까요?”

 

후드를 뒤집어 쓴 젊은이는 잘 안 보이는 얼굴 사이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주인장은 젊은이를 알아보고 흠칫 놀란 눈치지만 애써 모른 척이라도 하는 듯 말을 돌린다.

 

  “안쪽 일이라니...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오셨는지....”

  “어머나? 선수들끼리 왜 그러세요?”

 

젊은이는 세탁기 뒤편으로 쳐져있는 검은 장막을 비집고 뒤로 난 공간으로 들어간다.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양 대형 금고식 잠금장치도 쉽게 풀어버리고는 비밀 공간으로 들어가는 젊은이. 불안에 떠는 눈동자를 애써 숨긴 채 젊은이를 뒤쫓으며 주인장은 만류한다.

 

  “어어어, 거긴 함부로 들어가면...”

  “어휴~ 냄새~ 아무리 비밀 작업장이라지만 환기는 하나도 안 하나보죠?”

 

안쪽 비밀 공간에는 선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랙마운트 서버들 수십 대와 브라운관 CRT 모니터 여러 대가 늘어서 있고, 그 외에도 프레스기와 등사용 인쇄기, 그밖에도 여러 장비들이 즐비해있다. 누가 봐도 수상하고 범상치 않은 작업장으로 보이는 이곳에 대한 힌트는 간판에서 이미 드러나있다. ‘신원세탁’... 말 그대로 이곳은 고객의 신원 그 자체를 세탁할 수 있는 곳이다. 신분증 위조는 물론, 과거 자신이 남긴 모든 기록들까지 말끔히 삭제 및 조작할 수 있는 곳. 이런 기가 막히는 작업장이 기계 무덤 사이에 파묻혀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감히 하기 어려우니 오히려 위치 선정으로는 이보다 더 탁월할 수도 없을 것이다.

 

  “... 그래서, 안쪽 용건이 뭐냐?”

 

지금껏 모르쇠로 일관하던 주인장은 기왕 비밀 공간까지 들어온 마당에 더 이상 감출 이유도 없다는 듯이 젊은이에게 말한다.

 

  “아 별건 아니에요, 그냥 기록 하나만 좀 살짝 수정해주셨으면 해서요.”

  “... 네놈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진 모르겠지만...” 주인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간다.

  “난 이 일 손 뗐어, 더 이상 뭘 부탁해도 들어주긴 어렵다.”

  “예? 그럴 리가요.” 젊은이는 주인장의 거절을 웃어넘긴다.

  “안쪽 일을 손을 떼셨으면 애초에 이 무덤 같은 범죄 소굴에 굳이 숨어 계실 이유가 있겠어요? 게다가 저 모니터들, 지금도 열일 중인데요?”

 

젊은이가 눈짓으로 쓱 가리킨 CRT 모니터로 세워진 스크린의 벽에는 온갖 장면들이 송출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백악관 집무실, 유엔 상임 이사국 회의실 등등 절대 세탁소 같은 곳에서 시청할 수 있을 법하진 않은 곳들의 모습들이 움직이고 있다. 쉽게 젊은이를 내보내긴 어렵겠다 싶은 주인장은 결국 체념한 듯한 얼굴로 젊은이에게 묻는다.

 

  “....견적은?” 

  “큰 거로 3장, 충분하죠?”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까지....” 주인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되묻는다.

  “말씀드렸잖아요, 별 거 아니라고. 아저씨라면 그냥 몸풀기 운동 정도라고요.”

  “그렇게 간단한 일인데 큰 거로 3장씩이나 네놈이 줄 리가 있다고? 흥!” 주인장은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 정말이에요, 다만 저한테는 무지하게 중요한 일이라서 말이죠.”

 

젊은이는 어깨를 으쓱 해보이더니 바퀴 달린 의자 위에 털썩 몸을 던진다. 껌을 쩝쩝 씹어대며 깍지를 끼어 머리를 받치고는 다리를 꼰 채로 주인장을 치켜 올려보는 젊은이. 여전히 제안이 못마땅한 듯 주인장은 거절할 궁리를 하려고 젊은이에게 되묻는다.

 

  “도대체 무슨 기록이길래 나까지 찾아온 게냐? 니녀석 도대체...”

  “아 그게요....”젊은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읊조린다.

  “수퍼솔져 프로젝트...”

 

그 순간 요란하게 비상 알림음이 울리더니 사이렌 밑에 달린 통신장치에서 급박한 무전 소리가 나온다.

 

  「카두케오스! 카두케오스! 응답하라! 여기는 베디비오스! 유스티니안이 당했다! 유스티니안이...」

 

무전은 짧게 끝나고,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보랏빛 섬광이 번뜩이더니 통신장치가 기공탄에 박살난 탓이다. 젊은이는 기지개를 쭉 펴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고는 천천히, 뚜벅뚜벅 주인장을 향해 걸어가며 읊조린다.

 

  “그러게 그냥... 냉큼 받아먹었으면 좋잖아.... 왜 뜸을 들여서 서로 피곤하게 해....”

  “설마 네 녀석, 유스티니안을....?”

  “뭐 그건 알 바 아니고, 알아서 생각하세요. 아무튼 여기는 가급적이면 남겨두고 싶었는데 말이야, 쓸모가 많은데 말이지. 근데 이렇게 들켜버리면,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말을 마친 젊은이의 눈에서 보랏빛 안광이 반뜩이더니 기공의 풍압이 젊은이의 후드를 벗겨버린다. 젊은이의 손에는 보랏빛 불꽃이 타오르고, 조금 전까지의 능글맞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살의가 가득 찬 기운이 느껴진다.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인 주인장. 그러나...

 

  “흥... 아무래도 너무 깔보인 것 같구만....”

 

순간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정리가 안 된 것 같던 전깃줄들이 일사불란하게 젊은이의 양팔을 향해 날아들어 옥죈다. 마치 아나콘다와도 같은 움직임, 그렇다. ‘카두케오스’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일컫는 말이다. 모든 것을 관조하는 자, 모든 뒤치다꺼리를 다 맡아 하는 자, 전령이자 심부름꾼, 그리고 사기꾼의 신인 헤르메스의 상징을 자처한 수퍼솔저, 그가 카두케오스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 홈그라운드에서 너무 자만한 것 아니냐, 테오도라?!”

 

카두케오스의 눈에서 녹색 안광이 번뜩이더니 다 늙은 육체가 다시 벌크업해오르고, 카두케오스가 테오도라를 향해 달려들자 주변의 전깃줄과 공구들이 함께 날아들어온다. 하지만 테오도라는 예상했다는 듯 당황하는 기색 없이 보랏빛 안광을 더욱 타올린다. 보라색과 녹색의 섬광은 서로 맞부딪혀 주변을 희뿌옇게 가리고,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섬광이 구룡성채를 넘어 온 지대에 울려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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