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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iterature

레이븐 단편선: <곤(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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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제가 작년 3월 정도에 작성한 글입니다.

저는 인문학 공부를 오랜 기간 해오면서 '정의(正義)'와 '선(善)'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물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이다보니 결론이 날 리는 만무하며, 그 와중에 겪었던 좌절과 고뇌, 허무감 등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0년은 '나는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왜 세상은 반지성주의로 빠지는가'에 대한 허무감이 가장 심해질 시기였습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글은 일종의 자전 소설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곤은 용이 되기를 그토록 갈망하지만, 곤의 소망은 세상사의 눈에는 그저 허황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고, 부정한 것들을 바로잡고 싶었다는 욕망이 '용'이라는 크나큰 이상향인 동시에 허황된 꿈으로 투영되었습니다.

곤은 용이 되기 위해 천 년을 인고하지만 끝내 괴물에 불과한 이무기로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제가 꿈꾸던 이상향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인고하던 과정이, 외려 제 자아를 비대하게 한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나에게 동조해주지 않는 자들에게 나는 그저 비대해진 자아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의 존재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조와 두려움이 섞여있는 비유일 것입니다.

 

한편 <곤> 속의 원시천존이라는 존재는 그런 순수한 이상향을 지닌 존재들의 꿈을 인정해주는 척 써먹다가 마지막에 배신하는 존재들을 담아본 모습입니다.

원시천존은 곤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공수표를 날려놓고선 곤이 이무기가 될 동안 브레이크를 걸어줄 그 어떤 존재도 남기지 않았고, 결국 18대 이후가 되어서 이무기가 깨어나자 그냥 대중에게 사냥당해버리게 방치합니다.

(이 역시 제가 당했던 일화들을 우화로 녹여낸 것인데, 자세한 내막까지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쓸 때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던 시기였고, 자조와 회한이 섞인 자전적 우화로 이를 녹여내보면서 제법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만이 아니었구나, 세상이 그토록 잔인한 걸 같이 슬퍼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리고 내가 당한 처지를 비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이라고 세상이 바로잡혔다거나 형편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악회되면 되었지 개선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곤>이라는 단편을 쓴 일은, 저마저 염세주의로만 끝나서는 인고하고, 고뇌하고, 울분을 터뜨릴 줄 아는 사람이 점점 더 줄어들 것은 아니냐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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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곤'은 자라서 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붕새'가 되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등용문'의 설화와 믹스해보았다.

北冥有魚, 其名爲鯤. (북명유어 기명위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곤지대 부지기기천리야)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에 이르는 지 알 길이 없다.
化而爲鳥, 其名爲鵬. (화이위조 기명위붕)
(곤은) 우화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붕지배 부지기기천리야)
붕의 등은 몇 천 리에 이르는 지 알 길이 없다.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노이비 기익약수천지운)
거세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
是鳥也, 海運則將徙于南冥. (시조야 해운즉장사어남명)
이 새는 천지가 뒤바뀔 때에 장차 남쪽 끝 검푸른 바다로 옮겨 가려 한다.
南冥者, 天池也. (남명자 천지야)
남쪽 끝 바다란 곧 하늘의 연못(천지)이다.

齊諧者, 志怪者也. (제해자 지괴자야)
『제해』는 괴이한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해지언왈 붕지사어남명야 수격삼천리)
『제해』에 쓰여 있있기를 “붕이 남쪽 명해로 옮겨 갈 적에 물이 삼천 리로 치솟고,
搏扶搖而上者九萬里, (박부요이상자구만리)
수면을 쳐서 올라가는 것이 구만 리이며,
去以六月息者也. (거이유월식자야)
떠난 지 여섯 달이 지나서야 쉰다.”라고 한다.
野馬也 塵埃也 (야마야 진애야)
아지랑이와 흙먼지 티끌은
生物之以息相吹也(생물지이식상취야)
살아 있는 생물들이 서로 입김을 내뱉는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현상이다.
天之蒼蒼 其正色邪(천지창창 기정색사)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그 본래의 제 빛깔인가
其遠而無所至極邪(기원이무소지극야)
아니면 끝없이 멀고도 멀기 때문인가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기시하야 역약시즉이의)
붕이 아래로 내려다볼 때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사실 '곤'이라는 상상 속의 동물은 원래 커다란 물고기에서 대붕으로 변신하여 승천한다고 전해지며, 『장자』 소요유편 도입부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곤이 미물에서 성수로서 승격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애초부터 영물이지만, 저는 보다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등용문(登龍門)' 고사와 적절히 버무려냈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제 글에서 곤은 용이 되지 못한 채 괴물로서의 오명을 쓰고 세상을 등졌어야 했지만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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