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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Non-Literary

긍정이라는 말이 불러온 무책임과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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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PC 환경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있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며, 가급적 PC에서 조회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광풍에 몰아넣었던 자기계발서가 있습니다.

아니, 사실 '계발'이라는 말조차 갖다 붙일 수가 없는 허무맹랑한 사이비 종교스러운 말만 담은 해괴한 잡담록인데,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켰고, 이를 실제로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 책이 유행하던 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대로 공부를 때려 치우고 그저 수능 만점을 생각만 하면 이루어진다면서 긍정적으로 생각만 하다가 인생 조진 친구들도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요즘 친구들이 이런 얘길 들으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냐는 반응이 나오겠지만, 그땐 정말로 그랬습니다. 사이비 종교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심적으로 바닥을 친 사람들의 판단력이 흐린 것을 제대로 공략하여 그들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나무야... 인간이 미안해...

대충 이쯤 서두를 논하면 어떤 책 얘기인지 아실 분들도 꽤 많으실 겁니다.

론다 번의 저서 『더 시크릿』에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장 22절)"라는 성경 글귀로 시작하면서 이른바 "끌어당기기 법칙(Law of Attraction)"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긍정 파워가 그것을 실현시킨다는 사이비 주술적인 개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에선 그게 먹혔습니다.

무슨 태평청령도가 유행하던 중국 한나라 말기도 아니고, 21세기 현대 사회 국가에서 어쩜 그럴 수 있을까요?

이제와서 돌이켜보자면 저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두 가지 특징에서 비롯된 기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특징 중 하나는 한국 특유의 무한 긍정주의, 또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의 문화 지체 현상으로부터 비롯된 천민자본주의입니다.

이 중 후자는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족으로 유독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에 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 천민자본주의에 찌들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막스 베버가 유대인 차별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라는 근거를 들면서 사용해선 안 될 용어라는 식으로 호도합니다.

본질은 그것이 아님에도, 본인들이 숭배하는 자본이라는 가치가 욕 먹는 것이 죽어도 싫기에 사회·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인 유대인 차별을 근거로 들며 선동하는 것입니다.

천민자본주의의 어원 자체는 막스 베버가 유대인 천민 계급의 자본 축적을 분석하면서 등장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천민과 상류층의 벽이 허물어지자 상업, 금융업을 이용해 기하급수적인 자본을 획득한 중세 시대 천민 출신이었던 유대인계 자본주의자들이 수익에 비례한 자본주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분석해낸 것입니다.

결국 이 용어의 본질은 "배금주의에 따른 문화 지체와 시민 의식의 부재"에 있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더 시크릿』을 팔아먹었던 관계자들은 전형적으로 천민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랐습니다.

하등 쓸모없는 헛소리이지만 테레사 수녀 같은 위인들을 들먹이며 포장한 거짓부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팔아제끼는 것은 결국 천민자본주의로부터 발현한 도덕적 해이에 근간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문화와 시민 의식이 갖춰진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거짓 부렁 포장에 넘어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한국 사회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한국 특유의 무한 긍정주의 덕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유독 긍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무언가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마냥 매사에 부정적이고 초를 치는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정확한 근원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통해 유추해보자면 유독 침략을 많이 당하고, 정복에는 소극적이었던 역사가 길었던 것이 원인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이고, 증명된 사실 여부가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생지옥이 길었던 탓이라면, 이러한 태도는 전근대 사회에서 끝났어야 하며, 이런 과정을 대부분의 서구 사회는 거쳐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닌, 열강의 세계 대전의 여파에 휩쓸려 얻은 근현대화를 겪었습니다.

전형적으로 문화 지체 현상이 생겨나기 좋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급속한 근현대화를 강요받는 와중에, 오로지 경제 성장과 같은 수치적으로 드러나는 지표의 상승에만 급급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비판 의식의 성장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급성장이 가져올 페해에 대해 논하면 발전에 발목을 잡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매도당합니다.

잘못된 사회 의식과 악습을 바로잡고자 하면 눈치 없는 놈으로 내몰리며 마녀 사냥을 당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추구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이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분위기 초치지도 않을 것이고, 비판에 발목 잡히거나 소모적인 논쟁을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스맨의 양산이 대한민국을 '생각하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 것에 아주 큰 일조를 했습니다.

물론 반지성주의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만, 한국에서의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레드넥들로 대표되는 서양의 반지성주의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려 하지 않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와중에 이를 긍정주의로 한번 더 합리화하여 개선의 여지를 아예 싹부터 잘라내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끌어당기기 법칙 같은 헛소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이루어진다?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 해봐야 본전이고, 이걸 부정하면 괜히 초치는 소리나 하는 못난 놈으로 마녀사냥하면 되니 너무 편리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직도 이 시크릿의 개소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에이, 아직도 저걸 믿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한다면,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혈액형 성격 테스트, 음이온과 게르마늄, 전자파 차단 스티커, MBTI 등 대한민국을 광풍으로 몰고간 사이비 과학들을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아니, 애초에 저 예시를 보고 이게 사이비 과학인 걸 깨닫기라도 한다면 다행이지,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앞서 말했던 무한 긍정주의로 모든 면죄부를 받습니다.

 

이렇게 긍정주의가 낳은 병폐에 대해 넋두리를 한 계기는 뭐 다른 게 아닙니다.

제가 티스토리와 유튜브를 통해 야구 컨텐츠, 특히 롯데 자이언츠와 관련된 컨텐츠를 제법 긴 시간동안 생산해오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습니다.

바로 저 무한 긍정주의 사단들이 남기고 가는 악플 때문입니다.

제가 야구 이론과 과학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생산하는 컨텐츠들이 단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욕하고 비난합니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바라봐야지 왜 꼭 말을 부정적으로 하면서 초를 치냐, 그러면 기분이 좋냐, 말하는 꼬라지가 역겹다, 건방지다 등등 뭐 이정도면 사실 양반이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도 많습니다.

그렇게나 긍정적인 거 좋아하고 매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소중하신 분들이 왜 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고 한없이 부정적인지 웃기는 짬뽕들입니다 아주 ㅋㅋ...

 

단언하건데 바로 그런 무책임한 무한 긍정주의가, 비판적 사고를 할 생각이 없는 반지성주의가 롯데 자이언츠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에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모 선수는 믿어주기만 하면 금방 잘 할 거야, 구단을 응원해주기만 하면 알아서 잘 할 거야, 한국은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이니까 세계 최강의 야구 실력을 가진 거야.... 염병들 하지 마십시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어디 야구 뿐이겠습니까? 한국 사회의 모든 병폐들을 통틀어 그 무한 긍정주의에 뿌리를 걸치지 않은 문제가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면 재수없다고 또 욕먹을 것 같지만, 저는 긍정에 눈이 먼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말을 한다면, 그건 진짜로 부정적인 측면이 크고,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선언하건데,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무한 긍정주의가 낳은 무책임과 반지성주의에 대항해 싸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무한 긍정을 해도 괜찮은 사람은 이 형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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